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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 이루마 손열음의 어린 시절

by apriljane 2024. 6. 8.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실력 있는 우리나라 피아니스트가 정말 많다. 그중 국제적 인지도 부분에서 현재 가장 알려져 있다고 인정받는 한국 피아니스트 세명을 선정하여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조성진

 

조성진은 1994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5세까지 말문이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 뜨거워를 아뜨라고 발음했고, 특히 사촌과 비교해서 말문이 늦어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6세 때 친구들을 따라 피아노 학원을 가게 되어 피아노를 시작해서 체르니 30까지 배웠다. 7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가 10세부터 피아노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는데 바이올린 대신 피아노로 전념한 이유가 피아노가 재미있었고 서서 연주하는 바이올린과는 다르게 앉아서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피아노를 선택했다고 한다. 조성진을 지도하던 피아노 학원에서는 조성진이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를 전해 들은 조성진의 부모는 개인 레슨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에 오르기 위해 예술의 전당 영재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여기서 박숙련 순천대 피아노학과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12세가 된 2005년 음악춘추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각종 콩쿠르를 석권했다. 이때 단독으로 금호그룹이 주관하던 금호 영재 콘서트를 가졌고 음악세계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예원학교에 입학했고 신수정 교수 등을 사사했다. 2008년 15세 때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콩쿠르에서 입상하기 시작했다.

 

이루마

 

이루마는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이루마라는 이름은 본명이다. 이름이 특이해서 처음 보는 이들은 일본 출신 아티스트라고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일본에 이루마라는 성씨가 있기도 하다보니 이루마 영상의 댓글을 보면 일본인이냐고 묻는 외국인이 많다. 인터뷰에서 이루마는 어떤 일을 뜻한 대로 하게 된다는 뜻인 순우리말 '이루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루마의 큰누나 이름은 이루다, 작은누나는 이루지이다. 딸의 이름도 이로운이다. 이루마는 그의 딸 이름을 딴 음악도 작곡하여 앨범에 실었다. 중국어권에서는 이윤민(李閏珉)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누나들이 먼저 피아노를 배우는 걸 보고 본인이 더 잘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유치원을 다니는 대신 피아노를 배우는 걸 선택했다. 1988년 영국으로 이주한 뒤 1990년부터 7년간 런던 퍼셀 음악학교에 다녔고 이후 명문 대학교 킹스 칼리지 런던에 입학해 2000년 6월 졸업했다. 1992년 영국 "크로이던 영 뮤지션 페스티벌"의 솔리스트로 데뷔하였고 2001년 5월 1집 Love Scene을 발매하면서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후 2017년까지 10집을 발매하면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7월에 입대하여 2008년에 군 복무를 마쳤으며 영국 시민권까지 포기하고 대한민국 해군에 입대(해군신병 521기)하여 군악병으로 복무했다. 해군 군악대에서 목격된 모습은 고연령에 군대를 왔음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빼는 것 없이 열심히 하던 모범 수병이었다. 위문 공연을 갈 때마다 폭발적인 인기로서 부사관, 장교 할 것 없이 존대를 하며 사인을 해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근무지는 해군본부 군악대와 해군홍보단이었다.

 

손열음

 

손열음은 1986년 원주에서 태어나 5살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손열음이란 이름은 '열매를 맺음'을 줄인 것으로 국어 교사인 어머니 최현숙 씨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름에서 '손'은 말 그대로 손을, '열'은 열 손가락을, '음'은 음악의 음을 가리킨다고 설명이 가능해서, 이름부터 타고난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국어 교사인 어머니 최현숙 씨는 고향 원주에서 서울까지 2시간씩 운전하여 레슨을 데리고 다닐 정도로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최 씨는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피아노를 취미로 연주하고 합창단 활동도 했을 정도로 음악 애호가다. 덕분에 딸이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어느 정도의 음악적 조언도 해줄 수 있었다고 한다. 손열음은 초등학교 시절 국내 콩쿠르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1997년의 러시아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입상이 첫 수상이다. 수상 경력들 중 손열음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것은 단연 2011년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의 2위 입상이었다. 당시의 2위 입상도 개최국인 러시아 출신 연주자들이 주로 우승을 차지하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분위기 때문에 아깝게 우승을 놓쳤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손열음의 연주는 호평을 받았다. 중학교 재학 시절인 2000년, 국내 최고 콩쿠르인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 2 위없는 공동 1위를 했고 원주여중 졸업 후 2002년 한예종에 예술영재로 입학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교수를 사사했다. 졸업 후, 하노버 음대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손열음은 자신의 실제 거주지인 독일 하노버에 거주하고 있다.

 

 

"물론 완벽한 음악은 없지만 저는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항상 노력하거든요. 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고 노력을 하면 좋은 연주가 나오더라고요. 아직도 가야할 길이 정말 멀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죠 " -조성진